끌어당김의 법칙을 시도해도 실현되지 않은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그렉 브레이든은 끌어당김의 법칙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이 세계가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원리를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노력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막스 플랑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물질은 어떤 힘에 기대어서만 발생하고 또 존재한다
이런 힘에 바탕에는 의식적이고 지적인 마음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마음이 곧 모든 물질의 매트릭스이다.
막스 플랑크는 이를 통해서 우주의 만물을 잇는 에너지장을 매트릭스로 묘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모두는 양자장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으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우선 양자장이 무엇인지 우리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원자를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어 보면 오직 진동과 에너지만 존재합니다.
사람이나 동물, 휴대폰이나 가구 등 우주의 모든 물질은 같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죠
이런 양자라는 극소세계에서는 기존 물리학과는 다른 매우 기이한 움직임들이 보이는데요.
그중의 하나는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서
물질이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즉 관찰하는 사람의 에너지와 물질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어떤 것이든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상상한다면 그 현실은 이미 양자장 속에서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당신에게 관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 가능성 속에는 건강하고 부유한 행복한 현실도 들어있고
그렇지 않은 현실도 들어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의식이 현재를 창조하는 '창조자'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우주물질의 기본인 양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주파수와 에너지로 존재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겹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으로 물리적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결정된 미래가 아닌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면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넓은 우주 속 모든 물질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과거에 한 물질이었다면 물리적으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모두 보이지 않는 양자장 안에서 즉각적으로 소통한다는 겁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입해 보면 내가 어떤 감정을 보내면 이 에너지 장을 통해서 그것에 맞는 현실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면 우주는 부정적인 현실로 즉각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본래 한 물질이었기 때문이에요.
빅뱅에서 나온 입자와 광양자들 역시 한때는 물리적으로 하나였으며, 이를 통해 우주의 만물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완두콩 크기의 우주 안에 뭉쳐져 있던 우주의 만물은 지금도 여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서로를 이어주는 에너지가 바로 플랭크가 말한 만물의 매트릭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주속에서 우리는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힘에 휘둘리는 '희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를 소외감과 고독에 휩싸이게 하고
때로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원인을 제거할 힘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과 감정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자들이며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양자장 속에서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의 힘에 대한 믿음과 우리는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양자장 안에서 우리의 감정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고 가능성들은 '저 밖'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때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느낌에 휩싸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장 안에서 우리는 모두 풀잎의 일부이고. 모든 바위의 일부입니다.
모든 빗방울의 일부이며, 아침 일찍 산책할 때 우리의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의 일부입니다.
양자장 속에서는 그 어떤 일이든 가능하며
우리는 어느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지 선택학 수 있습니다.
양자장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은 양자장이 인식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양자장이 인식하는 언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감정'과 '느낌'의 언어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느낌으로 그 가능성의 장에 에너지를 발산하는 거죠 하지만 양자장이 인지하는 언어가 감정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 느낌이나 다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물리학자 아미트 고스와미는 양자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식 상태로는 부족하며 '비범한 의식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속셈을 조금도 감추지 말고 구하라
득 에고에 기반을 주지 않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비심은 우주의 힘인 동시에 우주와 소통하는 인간의 경험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자비심을 가지려면 특정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판단이나 예고 없이 상황을 인식해야 합니다. 에고에 기반을 두지 않는 마음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상상, 믿음, 치유, 평화를 현재의 현실로 만드는 가장 큰 비결은 그 선택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내지 말고 기도에 임해야 합니다.
에고와 편견이 없는 느낌만이 창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적을 현실을 만들기 위한 시도에서 간과되곤 하는 고대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소망할 때
'이미 기도의 응답을 받은 듯한 감정'을 반드시 느껴야 한다는 겁니다.
치유. 풍요. 평화.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미 주어진' 것처럼 먼저 진심으로 느껴야 합니다.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소망하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과 새로운 현실이 깨어날 수 있도록 '생각의 느낌'과
'믿음'으로 철저히 따르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응답받은 느낌'으로 우주에게 '말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처럼 느길 때 그것이 바로 모든 가능성의 문을 여는 언어이자 코드인 겁니다.
이런 느낌 안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사가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는 의심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일부임'을 아는 관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단지 짐작하는 정도가 아닌 확신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의식 상태 안에 있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꿈과 기도와 기적이 시작되는 '순수한 공간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과 느낌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겁니다